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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배안나
- 작성일2011-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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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세의 나이로 대학을 들어간 황필상씨. 그는 7살 아래인 새까만 후배들과 공부를 했다. 특유의 끈기로 프랑스 유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KAIST의 교수까지 되었다. 그런데 그는 5억원이 필요해 동료 창업자를 보면서 용기를 얻어 수원에 생활정보신문사 (주)수원교차로를 창업, 기업경영에 투신한다. 그때가 1991년. 그는 과학영재를 기르는 일은 후배들이 더 잘 할 것 같아 교수직을 물려주고 전업사업가로 변신한다. 회사는 알차게 성장했다. 2002년 황 박사는 돌연 수원교차로 주식 전부를 모교인 아주대학교에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게 된다. 지인들은 물론이고 가족들도 놀랐다. 그만큼 그는 보통 사람과는 다른 두뇌와 가슴을 가진 사람이었다. 주식 100% 기증 의사를 전해들은 아주대학교는 "웬 돈벼락이냐"고 좋아하면서도 난감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당시 평가액으로 200억원 정도 되는 재산이기는 하지만, 이는 현금이나 부동산이 아니라 회사 주식이 아닌가. 회사를 운영하여 과실금을 남겨야 아주대 것이 되는데 아주대에는 창업자 황필상씨만큼 회사경영을 잘 해 줄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일종의 묘수가 등장한다. 100%가 아니라 90%만 기부받고, 10%는 황필상씨가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 전면에서 아니면 후면에서라도 회사경영을 계속해 달라는 방안이 그것이다. 그리고는 황필상씨를 설득하여 90%의 수원교차로 주식을 기증받을 장학재단을 설립한다. 얼마나 절묘한 방안인가. 국세청에서 140억원의 세금추징액이 발표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2008년 9월 1일 수원세무서장으로부터 세금납부고지서가 날아온다. 증여세 100억원과 가산금 40억원 도합 140억원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소위 그 유명한 5% 룰이 이때 등장한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48조에 의하면, 출연자가 자신이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의 주식을 장학재단과 같은 공익법인에 기부할 경우 회사 주식의 5%이상이 되는 금액에 대해서는 증여세를 물린다는 것이다. 황필상씨는 5%가 아니라 90%를 기부했으니 엄청난 \'세금폭탄\'을 맞을 수밖에. 전문가들에 의하면, 이 5% 룰은 외국에는 없는 규정이고, 한국의 재벌들이 공익재단을 이용하여 편법으로 증여를 하거나 기업을 간접 지배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졌다 한다. 하기야 재벌기업의 5%는 어마어마할 수 있다. 우리나라 상장기업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의 경우 시가총액이 100조원을 넘으니 5% 주식이라면 5조원이 넘는다. 5%는 그럴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황 박사와 장학재단은 청와대, 감사원,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탄원을 하다가 급기야 법원을 찾았다. 2010년 7월 15일 수원지방법원의 1심 재판에서는 다행히 증여세 부과가 부당하다고 판결을 내렸다. 그런데 2011년 8월 19일 서울 고등법원 2심 판결에서는 세무서장의 편을 들어주었다. 그 사이 세금은 체불되어 200억원이 넘었다. 국세청이 받아갈 200억원은 대부분 교차로 주식값이다. 수원교차로의 주식을 팔아야 이 돈을 회수해 갈 수 있다. 누가 200억원을 주고 수원교차로의 주식을 살 것인가. 아니면, 국세청이 경영을 해서 이익을 챙겨가야 할 판이다. 그 때의 수원교차로가 오늘의 수원교차로일 수 있겠는가? 최근 현대자동차의 정몽구 회장이 5천억원의 재산을 공익법인 해비치에 기증한다고 발표했다. 이 기부로 정 회장은 한국에서 개인기부 1위가 된다. 그런데 그 5천억원은 현대모비스 주식 7%를 말하는 것이다. 기부의사 발표는 했지만, 여기에도 5% 룰에 걸려 기술적으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미국의 기부왕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의 기부도 대부분 주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5% 룰이 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황필상씨의 장학재단은 구원장학재단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이제는 아주대생만을 지원하지 않고, 매년 전국의 대학생 200여명에게 4억원 규모의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세금폭탄\' 문제는 순수한 뜻으로 기부를 하고도 고통 속에 나날을 보내고 있는 황필상 개인의 문제나 구원장학재단의 운명만 달린 문제가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까지 나서고 있는 기부문화 활성화에 찬물을 붓는 재앙이다. 아니 그 보다 한국에서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는 절망감을 국민들에게 주는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 [경인일보 - 2011.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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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배안나
- 작성일2011-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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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부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지난 4월 국세청 발표자료에 의하면, 2010년 발생 종합소득세를 기준으로 볼때 상위 20%의 소득(평균 9천만원)이 하위 20%의 소득(평균 199만원)보다 45배 많다. 11년 전인 1999년에는 상·하위 20% 격차가 19배, 2005년에는 38배였던 것에 비해 점점 격차가 크게 벌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소득의 불평등을 말해주는 지니계수를 보면, 2000년 0.286이던 것이 점점 높아져 2008년에는 0.325를 기록했다. 통계청에서 이 지수를 발표하기 시작한 1990년 이후 사상 최고치라고 한다. 소득의 불평등은 자본주의의 기본속성이고 사회발전의 필연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런데 최저생계비를 못 벌고 있는 사람이 20.9%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아연해진다. 보건사회연구원은 우리나라의 빈곤층 비율이 OECD평균 10.6%를 크게 넘고 있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이 빈곤층의 40% 정도는 노는 사람이 아니라, \'등골이 빠지게\'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 소위 워킹푸어(Working Poor)인 것이다. 이쯤 되면 빈부 격차라는 말 자체가 너무 호사스럽지 않은가. 1970년대부터 시작된 시장중심 자본주의(신경제)가 우리나라에는 1998년 IMF경제위기를 겪고 난 후 상륙하였다. 그때 유행어 중 하나가 \'글로벌 스탠다드\'였고 구조조정과 성과주의가 자리를 잡았다. 기업을 사고 팔고, 정리해고를 하며, 성과에 따라 보상을 한다는 것 말이다. 그러면서, 고용불안이 일반화되고, 비정규직 근로자가 양산되었다. 신경제가 10여년 주류가 된 사이 우리 사회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게 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간극이 더 벌어지게 되었으며, 서울과 지방의 격차 또한 더욱 멀어지고 말았다. 이러한 격차는 단순한 소득의 격차가 아니라 사회계층으로 굳어지고 있으며, 사회계층을 이동하는 사다리는 점점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결국 사회불안과 사회갈등 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사회불만 계층이 확대되고, 사회에 대한 막연한 불만과 불신이 커지면서 무리한 주장이 많아졌으며 나아가서는 비행과 폭력, 자살 등이 늘어나고 있다. 관계를 중시하고 이렇게 저렇게 얽혀 있어 서로 비교하기를 좋아하는 한국인들에게 \'상대적\' 빈곤은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그 상대성에다 절대성까지 겹쳤으니 말이다. 신경제의 논리로는 이러한 사회불안을 치유할 수 없는 것 같다. 기존의 자본주의를 수정하여 공동체 의식을 살린 새로운 자본주의, 요즘 이야기되고 있는 자본주의 4.0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회적인 대각성과 사회적인 뉴 프레임(New Frame)이 필요하지 않을까. 우선 기업은 일자리 창출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 이익을 많이 내는 기업을 알아주는 시스템에서 일자리 창출을 많이 하는 기업을 우대하는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 기업이 이익을 많이 내서 세금을 많이 내면 될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부가 그 세금 모아 뭘 하겠는가. 결국 일자리 창출에 써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하는 일자리 창출이 기업이 하는 것만 하겠는가. "기업은 세금 적게 내도 좋으니 일자리나 많이 만들어다오"하면서 고용수준이 높은 기업에 세금을 과감히 공제해 주어야 한다. 둘째는 정규직 근로자 보호에 연연하고 있는 대기업의 노동조합도 과감히 기득권을 포기하고 임금 피크제 등을 도입하여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지금과 같이 인건비가 높고 노조의 파워가 높은데 어느 기업이 정규직 인원을 늘리려 하겠는가. 셋째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다. 사회지도층, 잘 사는 사람들이 도덕성을 갖추고 이웃을 돕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 뉴스만 보면 튀어 나오는 사회지도층의 비리, 청문회 마다 단골로 나타나는 \'위장전입\' \'다운계약\' \'병역비리\'를 보고 저소득층이 자신의 처지가 \'정당한\' 결과라고 어떻게 이해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또 다시 미국발 경제위기가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있다. 신경제논리로 이를 극복하려 한다면, 우리 사회의 상처는 더욱 깊어질 것이고, 사회불안 역시 가중될 것이다. 공동체 자본주의를 심각하게 고민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경인일보 - 2011.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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