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14
- 작성자구자영
- 작성일2008-08-25
- 33694
- 동영상동영상
-
-
112
- 작성자홍보팀
- 작성일2008-08-20
- 33972
- 동영상동영상
-
-
110
- 작성자구자영
- 작성일2008-08-18
- 35555
- 동영상동영상
-
천당에서는 소송을 할 수 없다는 우스갯 소리가 있다. 변호사가 1명도 천당에 오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변호사를 남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선한 사람이라기보다는 남의 돈만을 탐하는 악한 사람으로 풍자한 것이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분명 변호사 중 일부는 자기가 행한 업무행위에 비해 과다한 보수를 요구하거나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변호사는 정당한 대가 하에 법에 익숙하지 못한 국민들을 위하여 자신의 법률적 지식을 활용하여 자문이나 소송 등의 활동을 펼치고 있다. 모든 사회활동이나 경제활동은 법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러한 사회현상이나 경제현상이 나날이 복잡해지고 있는 오늘날, 다양한 법적 분쟁의 사전 예방이나 사후 해결을 위해 법률전문가의 도움은 필요불가결한 실정이다. 우리가 겪게 되는 각종 분쟁이나 갈등이 폭력이나 금력 등 부정한 수단이 아니라 법에 의하여 정당하게 해결되는 사회를 정의사회라고 한다면 이 정의사회에는 반드시 변호사가 있어야 한다. 국민의 질병 퇴치와 건강보호를 위해서 의사가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정의사회 구현을 위하여 매년 몇 명 정도의 변호사를 어떤 교육방법과 시험을 통하여 배출하는 것이 적정한 것인가가 계속 논란되어 왔고, 그 결실로써 내년에 총 정원 2천명 규모의 법학전문대학원 즉 로스쿨이 출범하게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로스쿨 정원과 맞물린 적정한 변호사 수를 둘러싼 논쟁이 끝난 것이 아니다. 시민단체와 학계는 배타적 진입장벽을 없애고 변호사 선임비용을 낮추기 위해서는 변호사 공급을 절대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법조계는 법조인의 양산은 사법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고 영리추구를 위한 폐해를 증대시킨다면서 변호사 수의 동결을 주장하고 있다.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법조인 1인당 국민 수는 5천783명으로, 미국 266명, 영국 557명, 독일 578명, 프랑스 1천509명과 큰 차이가 난다. OECD 회원국 등 외국과 비교하여 우리나라의 변호사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라마다 고유의 법률문화가 있고 경제력이나 법조유사직역 등 사회적 여건이 다양하기 때문에 변호사 1인당 인구나 GDP 대비 변호사 수를 바로 비교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적정 변호사 수에 대한 검토는 계속되어야 할 것이지만, 결코 간과해서 안 될 점은 단순히 변호사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 정의사회가 구현될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국민에게 봉사할 수 있는 소양과 인품을 가진 변호사를 양성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말하자면 양에 못지않게 질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법조특권의 해소, 전문적 변호사의 양성, 법률서비스의 제고 등은 로스쿨에서 어떻게 학생들을 교육하고 실습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되었다. 이제부터는 변호사 수만이 아니라, 변호사를 양성하는 로스쿨의 교육도 정의사회와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인식이 확대되었으면 좋겠다. -경기일보 2008-08-04 기고-
-
108
- 작성자홍보팀
- 작성일2008-08-11
- 34393
- 동영상동영상
-
8·15 광복절에 즈음하여 오늘 문득 필자는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을 떠올려본다. 얼마 전 일본 우쯔노미아에서 생애교육국제세미나가 열렸었다. 그곳에서 얄밉도록 무서운 나라 일본의 혼과 저력을 충격으로 감지해 볼 수 있었다. 왜 하필 광복절을 맞으며 역설적으로 일본의 힘을 되뇌어 보고 싶어진 것일까? 국제적인 분쟁의 핵으로 떠오른 독도문제를 접하며 필자는 조금은 냉정하게, 그래도 배워야 할, 여전히 무서운 일본의 힘을 곰곰 되새겨 보게 된다.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우쯔노미아에서 필자는 온종일을 묵묵히 그다지 연고도 없어 보이는 낯선 국제회의에 그 누가 의무적으로 오라 청한 적도 없건만, 행사가 종료될 때까지 앉아있는 일본의 수백명 나이든 시민 참석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쯤해서 필자는 우리의 세미나 장면들을 떠올려 보며, 얼굴이 불그레 상기되지 않을 수 없었다. 세미나가 열린다하면, 일부의 관심 있는 전문가 또는 조금은 억지스럽게 동원된 청중들로 메워지기 십상인 우리의 상황과는 다름에 놀라웠다. 이것이야말로 무서운 일본 시민 대중의 힘이라 느꼈다. 끝까지 남아있던 시민들 중에는 그야말로 촌부, 촌로들이 상당수였다. 그들은 무척이나 진지했다. 그들은 우쯔노미아대학 생애학습연구소 시민대학의 나이든 마을 학습자들이었다. 거의 한평생을 생업에 종사하면서도 짬을 내어 ‘배우는 즐거움’에 사로잡혀 있는 시민학습객들이라 하겠다. 무슨 힘일까?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왜 끝까지 자리를 뜨지 않고 배우려들고, 그 배움을 진지함 속에 진한 지적 희열로 연결하도록 만드는 것일까? 왜 그들은, 그렇게 많은 질문을 외국 그것도 한국에서 온 우리들에게 하고 싶었던 것일까? 무엇이 그들을 이 자리에 늦은 밤까지 남아있도록 유인하고 있는 것일까? 우쯔노미아에서 필자는 우리 교육을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떠올려보지 않을 수 없었다. 거창한 교육개혁의 화두가 요란한 슬로건들과 함께 내걸어지는 우리 교육의 실체가 조금은 우려스럽게 스쳐 지나갔다. 참으로 많은 교육개혁 사업들이 반세기 동안 우리의 교육을 강타해왔건만, 여전히 내실보다는 슬로건이 더 앞서는 듯 씁쓰레한 우리 교육을 지켜보며 필자는 새로운 자성의 마음으로 2008년의 광복절을 맞고 싶어졌다. 세미나의 대미를 장식한 ‘사사끼’라는 한 젊은 일본교수의 ‘충전과 방전과 축전의 학습으로 부활하라’라는 메시지 또한 필자에겐 또 다른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젊은 교수의 폐회 강연은 같은 대학교수로서 평생을 스스로 식자층이라 자부해왔던 필자에겐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매일 매일 일상의 삶을 통해 배움의 에너지를 백배 충전하고, 그 중의 절반 이상을 축전하는 향기로운 배움의 삶을 살라고 사사끼교수는 외치고 있었다. 참석자들은 모두 진지하게 백분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충전한 배움의 에너지의 절반 이상은 절대 방전하지 말라’고 그는 역설했다. 우리는 어떠했는가? 오히려 역으로 십을 충전하고, 백을 방전해버린 삶을 살고 있지는 않았던가? 조금 배운 내용, 조금 알고 있는 지식, 조금 들은 정보들로 전국을 돌고 강연으로 방전하는 그런 교육자로 살아온 것은 아니었던가? 세계적인 교육열의 위대한 학습국가 대한민국이 8·15 광복절을 기해 대인의 마음으로 우쯔노미아의 교훈을 되새기며 이젠 백배 충전하고, 축전하는 교육의 힘으로 부활하기를 기대한다. - 경기일보 2008-08-11 기고 -
-
106
- 작성자홍보팀
- 작성일2008-08-11
- 33825
- 동영상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