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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2025.11.10.월] 쿠마르 교수가 중국 '러브콜'을 마다한 까닭은

  • 박미연
  • 2025-11-10
  • 34


“중국 대학이나 기관에서 스카우트 제의 이메일이 많이 오냐고요? 그럼요, 오늘 아침에도 받았는걸요(웃음).”

아주대 첨단신소재공학과·에너지시스템학과 모히트 쿠마르(Kumar·41) 부교수는 인도 출신이다.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 특히 사람 뇌처럼 정보를 빠르게 계산하고 기억하는 ‘뉴로모픽’ 반도체 기술 전문가다. 2016년 이스라엘 와이즈먼 연구소에서 일하다, 차세대 반도체 기술 연구에 집중하기 위해 한국으로 건너왔다.

국내에서도 그는 활발하게 연구하고 있다. 2023년 산소 이온 움직임을 이용해 초고속·저전력 연산이 가능한 뉴로모픽 나노 소자를 개발, 교육부가 선정한 ‘우수 성과 50선’에 들었다. 국내에서 연구하는 외국인 학술 성과가 정부 우수 성과에 포함된 것은 처음이었다.

이런 차세대 반도체 인재를 ‘천인계획(千人計劃)’을 시행하는 중국이 지나칠 리 없다. 쿠마르 교수는 “요즘도 한 달에 3~4번꼴로 중국에서 한국서 받는 연구비의 두 배를 지원하겠다는 조건의 스카우트 제의가 온다”고 했다. 그가 슬쩍 보여준 이메일함엔 중국 4대 명문 푸단대를 비롯한 중국 유수 대학에서 보낸 초청 레터가 잔뜩 쌓여 있었다.

그렇다면 쿠마르 교수는 왜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는 중국이나 다른 나라로 옮겨 가지 않을까. 한국에 남은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아주대의 적극적인 인재 확보 노력이 있었다. 몇 년 전 쿠마르 교수는 중국 말고도 영국 케임브리지와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오라는 제안을 받았다. 당시 그는 박사후 연구원 신분이었다. 소식을 들은 서형탁 에너지시스템학과 교수 등 동료들과 최기주 아주대 총장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학교 측은 “다른 나라로 옮겨 연구를 다시 시작하는 것보다, 한국서 부교수로 연구를 지속하면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지 않겠느냐”며 그를 설득했다. 외국인 연구원을 부교수로 발탁하는 것은 국내 학계 환경에선 파격 결단이다. 쿠마르 교수는 “한국에서 연구를 지속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아주대 제안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이후 연구를 제대로 마칠 때까진 다른 나라로 옮길 생각을 하지 않게 됐다는 것이다.

둘째, 쿠마르 교수 아이들이 한국을 떠나지 않으려고 했다. 쿠마르 교수는 수원의 일반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들·딸을 두고 있다. 입학할 때 한국어를 한마디도 할 줄 모르던 두 아이를 위해 학교 측은 한국어 선생님을 따로 붙여 줬다고 한다. 덕분에 쿠마르 교수 아이들은 이제 부모 몰래 비밀 이야기를 한국어로 나눌 정도가 됐다. 국내로 들어온 외국인 인재의 ‘정착(relocation)’을 지역 공동체까지 나서 도운 사례다. 쿠마르 교수는 “한국 정부가 외국인 인재 정착을 이렇게 다방면으로 돕는다면, 중국이 몇 배 연봉을 제시해도 한국에서 연구하려는 외국인 인재는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대만 TSMC가 세계 반도체의 심장으로 떠오른 배경에도 섬세한 외국인 유치와 정착 지원이 있다는 사실이 문득 떠올랐다. TSMC가 있는 신주과학단지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국가 운영 학교와 이중 언어 국제학교가 있다. 연구자 자녀들은 우선적으로 이곳 학교를 다니도록 하고 환경 적응을 돕는다. 인재를 붙드는 것이 꼭 ‘쩐(錢)’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우리 정부는 7일 2030년까지 해외 우수 연구자 2000명을 유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들을 데려온 다음 어떻게 정착시켜 국내 자산으로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숫자에만 집착하지 말고 인재의 마음과 삶의 맥락을 살펴야 한다. 쿠마르 교수 사례만 참고해도 답이 보일 거라고 정부에 귀띔해 주고 싶다.

(출처: 조선일보 <에스프레소>(https://www.chosun.com/opinion/espresso/2025/11/07/KMLZQC2U2VGNPCFE5L35EIFT7A/))